잡담/독서감상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김난도)

포토캐논 2012. 11. 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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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저자
김난도 지음
출판사
오우아 | 2012-08-2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흔들리며 어른의 문턱에 선 이들에게 보내는 란도샘의 가슴 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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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실망하지 말자.

이 좌절이 훗날 멋진 반전이 되어줄 것이다.

위기가 깊을 수록 반전은 짜릿하다.

포기하지 말자.

내 인생의 반전드라마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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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두 가지다.

하나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꿈이 이루어져버리는 것이다.


- 오스카 와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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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이 있다. 내 꿈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재야 한다. 막연한 도피가 아니라 명확한 도약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을 때 '결정적 순간'은 만들어진다. 그 순간을 위해 천천히 서두르며 준비해야 한다.

그 시정까지는 이 말 한 마디가 등대다.

"사랑하지 않을 것이면 떠나고, 떠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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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 우리는 잊지 못한다. 처음 소속된 낯선 공간에서 한 달 내내 일한 내 땀의 첫 대가를. 그건 아마도 첫 사냥에 나선 젊은 사자가 제 힘으로 먹잇감을 쓰러뜨렸을 때의 쾌감에 비할 수 있으리라. 물론 부모님께 속옷도 사드리고 친구들에게 한턱내느라 며칠 지나지 않아 통장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겠지만, 급여통장에 선명하게 찍힌 입금액수는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견고한 증거일 터이다. 한 달간 내 몸과 마음을 바친 대가로는 아직 적은 액수이지만, 커다란 꿈을 향해 출발하는 이에게는 대견한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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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도로 석사학위를 받고 취직한 지 얼마 안 되는 제자가 학교로 찾아왔다. 보통 졸업하고 몇 년은 지나야 찾아오는데, 이 친구는 굉장히 빨리 찾아온 셈이다. 이유를 물으니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란다. 연구실의 선후배도 만나고 내게 인사도 하려고 월차까지 내고 왔다니. 회사에는 '사람'이 없었을까. 직장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외로워요."

이상하지 않은가? 좁디좁은 연구실에서 고작 몇십 명 대학원생끼리 복닥복닥 지지고 볶다가, 수천 명의 사원이 함께 일하는 회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외롭다니. 대답인즉슨 그래서 더 외롭단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홍수 속에서 누구와 사귀어야 할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판단은 쉽지 않고, ASAP(As Soon As Possible)로 쏟아지는 일에 치여 친구들의 문자를 '씹기' 일쑤고... 그러다보니 친했던 친구들은 점점 연락하기 힘들고 또 멀어지고...

그 심정, 알 것 같다. 나도 사회생활을 오래할 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지만, 퇴근길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고 있자면 근원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복받칠 때가 있다. 나이 들수록 외로움의 빈도와 깊이가 심상치 않다. 이 외로움이란 놈은 먹성 좋은 돼지의 기갈 같은 것이어서 조금만 달래주기를 게을리하면 시도 때도 없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공허하지 않느냐고 관심을 구걸한다. 어쩌면 외로움이란 타인과의 관계 단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텅 빈 내면을 돌아보라는 영혼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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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사람이 행복을 이야기한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행복은 화두가 아니었다. '성공'이 중요했다. 일단 성공하면 행복해진다고 믿고, 성공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줄기차게 뛰어왔던 것이다. 이제 그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 많이 이룬다는 것이 곧 행복을 보장하는 길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행복은 무조건 많이 성취할 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비해 얼마나 성취햇느냐가 더 중요하다. 공식으로 표현하자면 '행복 = 성취/기대'다. 이 공식에 의하면 행복해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공식의 분자에 해당하는 '성취'를 크게 하고, 또 분모에 해당하는 '기대'를 작게 하는 일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멋진 가방을 살 때, 승진했을 때, 시험 점수를 잘 받았을 때, 운동에서 상대를 이겼을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란다. 도파민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즐거움과 쾌감을 결정한다. 바로 행복공식의 분자가 커질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그 동안 우리는 도파민적 삶, 즉 성취에 기반을 둔 행복만을 좇아왔다. 전후 모든 것을 상실한 상황에서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부지런히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고 열심히 성과를 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쟁에서 이기고 남보다 빨리 승진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도파민의 문제점은 한번 반응한 자극에는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 산 물건이 주는 기쁨이 그다지 오래가지 않고 금세 사라지는 이유다. 그래서 도파민으로 행복하려면, 좀 더 큰 성취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느 순간 만족에 중독되어 점점 더 강한 자극, 더 큰 기쁨을 맛보지 않고서는 행복하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반면 마음이 편안할 때, 명상할 때, 숲속을 걸을 때, 햇볕을 쬘 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느끼는 나른한 행복이 있다.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이 때 나온다. 우리가 꾸준히 행복하려면 도파민만으로는 부족하며 세로토닌이 필요하다. 더 많이 성취하고 더 많은 물질을 갖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른바 세로토닌적 삶이다.

행복하려면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조화가 중요하다. 감사 없는 성취는 고단하고, 성취 없는 감사는 무력하다. 성취의 열망과 감사의 수굿함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느냐에, 우리의 행복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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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딜레마다. 소크라테스마저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말했다. 법원 주차장은 주말에는 강당에서 열리는 결혼식 하객들로 만원이다가, 주중에는 이혼서류를 접수하려는 민원인으로 붐빈다. 처녀총각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는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반면, 아줌마 아저씨가 즐겨 보는 드라마는 혼외관계가 단골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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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에는 많은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독신생활에는 즐거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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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쯤 하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사실 좋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결혼을 결심하는 경우보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나타난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할 수 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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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관심을 끄는 진화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이성의 외모에 매혹되는 것이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배우자를 찾아내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바나 초원의 원숭이가 아니다. 후손을 본 이후에도 배우자와 함께 수십 년을 더 살아간다. 설령 진화심리학의 '본능설'이 맞더라도, 배우자의 외모는 행복한 결혼생활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이혼하려는 부부가 "그래도 잘 생긴 것 하나 보고 참는다"고 말하는 것, 본 적 있는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모라는 기준이 잠재적이건 명시적이건 영향을 덜 미칠 수록 결정은 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연봉이나 재산도 보지 않을 수 없다. 돈은 자본주의 사호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옛말에도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행복은 창을 열고 도망간다"고 했다. 요즘 행복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가 부쩍 늘었는데, 많은 학자들이 행복의 중요한 조건으로 경제력을 든다. 하지만 소득은 일정 수준이 넘으면 더 이상 행복을 증진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결혼하는 이유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재산만 보고 하는 결혼은 위험하다.

실제로도 '부'가 중요한 동기로 작용한 결혼이 아름답지 못하게 끝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사실 재산이란 게 젊은 신랑 신부 당사자의 것이라기보다는 그 부모의 소유인 경우가 많은데다, 부잣집에서 오냐오냐 자란 친구들이 결혼생활의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결혼정보회사 임원의 인터뷰를 보니, 돈, 집안배경, 띠동갑, 용모 등의 조건을 먼저 내세운 커플들의 이혼율이 높단다. 조건만 고려하다보면 서로 밑지지 않으려는 선택을 하게 마련인데, 그 결과 누군가는 손해 봤다고(아마도 서로 자기가 그렇다고 믿겠지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재력을 비롯한 조건으로 출발하는 결혼이 아슬아슬한 이유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성품이다. 나는 이것이 다른 모든 조건을 압도할 만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식고 미모를 잃고 재산이 없어져도, 기본적인 품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 아들이 배우자를 고른다고 한다면 딱 한 가지, 상대방의 인성만 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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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미혼자들이 결혼을 미루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경험자로서 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것은,

그렇게 준비나 자신감이 확실해지는 시점이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이다.


마음먹었거든,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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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야! 오랜만에 모이니까 정말 좋네.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자."

졸업 후 처음으로 대학 동아리 친구들이 모였다. 동아리가 2000년대에 해체되는 바람에 공식 모임이 전혀 없다가, 우리 기 부회장을 했던 친구가 백방으로 노력해서 위아래로 3년 선후배 정도가 한식집에서 모였다. 25년 세월의 강을 건넜지만 다들 예전 모습이며 말투 그대로다. 신기하다. 늙는 것은 겉모습 뿐인가보다. 옛날 별명을 부르며 와자지껄 떠들다가, 2~3개월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기로 굳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석 달 뒤 문자메시지가 왔다.

"5월로 예정됐던 동기모임이 취소됐습니다."

동아리의 2차 모임을 5월 19일에 이어가기로 날짜까지 잡아두고 헤어졌는데, 막상 다시 모이려니까 참석하겠다는 사람이 적어 다음에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도 하필이면 그날 다른 약속이 생겨 불참할 예정이었으므로 할말은 없지만, 미리 그날 약속을 비워뒀던 친구들이 무척 섭섭해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거다. 자기가 가고 싶은 모임에 가기보다는, 가야 하는 모임에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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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디지털 친구도 많다. 미니홈피, 블로그, 카페 같은 인터넷 기반의 모임에도 많이 가입하고, 미투데이,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에도 인맥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 떨어져도 두렵지 않다. "바르셀로나에 맛있는 한국 음식점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하고 올리면 '알바'들이 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성 있는 정보들이 속속 올라온다. 하지만 문제는 이방의 도시에서 맛집을 알려줄 친구는 몇천 명이지만, 밤새워 내 고민을 들어줄 친구는 드물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트위터를 하다보면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내가 외로워서 트위터를 하는 건지, 트위터를 하다보니 더 외로워지는 건지 헷갈린다. 직접 만나지 않으니 쿨할 것 같은데, 디지털 인맥에도 나름 피로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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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를 다시 읽는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인어공주가 우연히 왕자님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왕자님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다리를 얻게 되지만 그 대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잃는 것이었다. 다리를 가졌지만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는 왕자님과 재회했으나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결국은 물거품이 되어 죽음을 맞는다.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소통없는 섹스냐, 섹스 없는 소통이냐의 문제로 말이다.

하반신이 물고기일 때 인어공주는 왕자님과 만났고 사랑에 빠졌다. 대화할 수 있었지만 섹스는 할 수 없다. 안타까웠을 것이다. 사랑을 완성할 수 없다. 그래서 하체를 얻고자 했지만 대가로 치러야 했던 것은 소통의 수단인 목소리였다. 결국 사람의 하반신을 얻었지만... 그 결과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비극이다. 소통이 불가능한 섹스를 선택한 말로다. 지나친 해석인가?

그대가 인어공주(혹은 왕자)라면 무엇을 고를 것인가? 소통 없는 섹스인가, 섹스 없는 소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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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에게 갖는 감정은 모순투성이다. 존경과 무시, 선망과 질투가 공존한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비정한 사회에 발을 내디디면서 '아버지처럼 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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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딸의 첫사랑이다. 딸이 자기 짝을 찾아 사랑하고 결혼할 때, 아버지는 형편없는 노인으로 늙어 있다. 아버지, 그 영원한 이상형을 떠올리는 마음이 첫사랑에서 애잔함으로 바뀔 때, 소녀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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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어머니들에게 아들은 치적이다. 과거 '딸 넷에 막내아들 하나' 같은 자녀의 조합이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던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간혹 어머니들이 "아무개야" 하고 이름을 부르는 대신 그냥 "아들~" 하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나는 아들을 낳았다'는 자부심이 베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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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외가댁에서 있었던 일이다.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 방 천장의 전구를 갈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집안일에 아주 무심한 분이었기 때문에,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외할아버지가 전구를 다 갈고서 의자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는 혼잣말을 하셨다.

"서방 없는 년은 어찌 사누?"

그게 다였다.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 한 마디 하시며,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난 그 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나로서는 할머니 입에서 '년'이라는 욕설이 몹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놀라워,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야 그 말의 속뜻을 알 것 같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고맙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차마 손자 앞에서 (내가 없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겠지만) "고마워요" 라고 직접 말은 하지 못하고, '남편이 있으니 참 좋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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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혼자서 사는 것이다. 이력서의 경력 사이사이에 괄호쳐져 있는 고통과 좌절을 타인은 알지 못한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의 최고경영진이 되고, 한국에 돌아와 삼성전자와 삼성SDI 사장을 거쳐 삼성카드의 CEO를 맡고 있는 최치훈 사장은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력서만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무수한 고난과 절망을 겪었다."

나는 인터뷰 기사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 사람의 괄호 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삶 전체가 밝게 빛나는 태양일 것만 같았던 사람이, 알고 봤더니 나처럼 어두운 뒷면을 가지고 있는 굴곡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타국의 오지에서 동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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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드는가? 잊지 마라. 이 나라 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누군가 당신을 부러워하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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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주세요" 하고 쿨하게 말하기 직전에 스스로에게 딱 세 가지만 묻자.


하나, 이것은 정말로 내게 필요한 물건인가?

둘, 이것은 합리적인 가격인가

셋, 한 달 후에도 나는 이것을 지금처럼 간절하게 원할 것인가?


셋 중 하나라도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할 수 없다면, 과감히 돌아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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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마친 후, 어머니와 유품을 거두러 댁에 갔다. 나는 마루를 치우고 어머니는 장롱을 정리하고 계셨는데, 방에서 갑자기 울음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뛰어들어가보니 어머니께서 흐느끼고 계셨다. 장례식 내내 꿋꿋했던 어머니였기에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무엇이 저렇게 어머니를 오열하게 했을까?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겨울용 빨간 내복을 손에 들고 계셨다. 장롱 서랍 속에는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내복 댓 벌 가량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외할머니는 늘 소매가 나달나달해진 내복을 입고 계셨다. 그게 보기 흉했던지 어머니, 이모, 외숙모들이 찾아뵐 때마다 새 내복을 사다드렸는데, 외할머니는 그것들을 포장도 뜯지 않고 장롱 속에 고이고이 쟁여두셨던 것이다. 운명하실 때까지도 외할머니는 소매가 해진 내복을 입고 있었다.

"얼마나 사신다고, 이걸 이리 아껴두셨담!" 내가 열심히 등을 쓸어드렸지만, 어머니는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며 이후로도 방 안에서 한참을 더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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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옮기느라 책장 서랍 구석구석을 두지다보니 별게 다 나온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옛날에 선물로 받은 볼펜 세트.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주거나 나중에 쓰려고 아껴뒀는데, 막상 지금 꺼내니 잉크가 말라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때 쓸걸! 불현듯 외할머니 내복 생각이 났다.

좀 더 생각해보니 언젠가, 언젠가 하면서 쟁여놓기만 한 것이 볼펜만은 아닌 것 같다. 주말이 오면, 방학이 되면, 연구년을 맞으면, 은퇴하고 나면... 이런 마음의 꼬리표를 붙여놓은 채 머릿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기만 한 계획들, 목표들, 꿈들, 그래서 쇠도 뜨거울 때 두들기라고 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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